손흥민의 토트넘, 아시아 선수 최초 EPL 득점왕까지 7년의 기록

2015년 8월, 23살의 손흥민이 독일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잉글랜드 현지 반응은 미지근했다. 2,200만 파운드라는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이적료에 대해 영국 언론은 “검증되지 않은 아시아 공격수에게 지나친 투자”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손흥민은 분데스리가에서 이미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선수였지만, 잉글랜드 축구는 독일과 다르다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첫 시즌, 이 분석은 어느 정도 맞아 보였다. 손흥민은 공식 경기 28경기에 출전해 8골만을 기록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2016-17 시즌, 손흥민은 리그에서 14골을 터뜨리며 토트넘의 공격 옵션 중 하나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특히 이 시즌 손흥민은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 체제에서 시작된 토트넘의 상승기와 함께했다. 해리 케인이 주포로 중앙에서 득점을 쌓아가는 동안, 손흥민은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며 오른발로 때리는 슛을 주 무기로 삼았다. 이 움직임은 훗날 손흥민의 시그니처가 된다.

2019년 6월 1일,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 스타디움. 토트넘은 구단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다. 상대는 리버풀. 결과는 0-2 패배로 끝났지만, 이 경기까지 오는 여정은 손흥민의 커리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8강 맨시티전 1, 2차전에서 손흥민은 도합 3골을 기록하며 원정 다득점으로 4강 진출을 이끌었다. 4강 아약스 원정에서는 루카스 모우라의 해트트릭이 유명하지만, 당시 토트넘을 결승까지 끌고 간 동력의 상당 부분이 손흥민에게서 나왔다는 평가가 있다.

2019-20 시즌은 손흥민이 개인으로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해다. 그해 12월 8일 번리전에서 자신의 진영 페널티 박스 앞에서 공을 잡아 혼자 드리블로 70미터를 달려 득점한 장면. 이 골은 프리미어리그 시즌 최고 골을 의미하는 푸스카스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드리블로 7명의 선수를 제치고 골을 넣는 장면은 손흥민의 개인 기술과 체력, 집중력이 모두 드러난 장면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의 EPL 커리어에서 가장 빛났던 시즌은 2021-22이었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지도 아래 토트넘이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이 시즌, 손흥민은 시즌 막판 몰아치기로 23골을 기록했다. 동료 해리 케인과 함께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합작한 공격 듀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라운드, 노리치 시티 원정에서 두 골을 추가하며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와 공동으로 23골 득점왕에 올랐다.

아시아 선수가 유럽 5대 리그 득점왕에 오른 건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였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아시아 축구사의 기록이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전체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손흥민은 이 시즌 23골 중 단 한 개도 페널티킥으로 넣지 않았다. 오픈 플레이에서만 23골을 기록하며 얻어낸 득점왕이라는 점에서, 같은 점수를 기록한 살라(페널티킥 5개 포함)와 차별화된다는 분석이 많았다. 한국 시각으로 새벽에 진행된 이 경기를 기다리던 한국 팬들에게 손흥민의 득점왕 확정 순간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보낸 시간 동안 리그 공식 경기 400경기 이상을 소화하며 구단의 역대 득점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 구단 주장으로 임명되었고, 이제는 한 시대의 클럽 리더로서의 역할까지 맡고 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써내려갔던 한국 축구의 자부심이 손흥민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이어진 셈이다. 박지성이 팀 공헌도와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험으로 기록됐다면, 손흥민은 개인 기록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이름을 새긴 유형이다.

2015년 이적 당시 “검증되지 않은” 공격수로 평가받았던 선수가, 10년이 지난 지금은 토트넘의 상징이자 아시아 축구의 얼굴이 되었다. 이 7년이 넘는 여정은 한 선수의 개인사일 뿐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가 아시아 선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손흥민 이전에도 박지성, 이청용 같은 한국 선수들이 EPL에서 뛰었다. 하지만 득점왕이라는 개인 타이틀을 손에 쥔 건 손흥민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이 기록은, 앞으로 어떤 아시아 선수가 EPL에서 활약하든 넘어야 할 하나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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